베가

소형 휴대용 컴퓨터(UMPC)의 중간 단계로 개발사의 구상과 제품의 개념에 비해 기반 부품의 성능들이 따라주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한 불운의 명작. 개발사인 라온디지털은 이 제품 이후 두 번의 라인업을 추가한 뒤 2009년 중반에 부도가 났다.

2007년 2월 1일, 월급이 들어오고 할인쿠폰 같은 걸 기다릴 틈도 없이 바로 샀다.
2008년 9월 4일, 인천 살고 광화문 쪽에 직장이 있는 분께 넘겼다. 전날 결심을 하고 찾아보니 바로 구매 수요가 있어서 부랴부랴 사진 찍어 보내고 거래를 하기로 합의했다. 23만원으로 당시 시세보다는 조금 빠지는 것 같았지만 Eee PC 때문에 베가의 지위가 희미해진 시점이라 별 미련은 없었다.

명세

CPU는 AMD의 Geode를 썼다. 펜티엄 3 상위 클럭과 비슷한 성능으로 알려졌다. AMD 제품군이기는 하지만 애초 개발은 Cyrix에서 된 것이다. 임베디드 분야에 쓰이는 것으로 발열 등에서 유리해 사용되었다. 그래픽이 내장된 것이었는데 3D 지원이 없어서 '카트도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LCD는 4.3인치 채용. 800x480이라는 좀 애매한 해상도였다. 자체 설정 프로그램을 통해 압축 해상도라고 해서 1024x768 까지 강제로 변경할 수도 있었다. 액정의 표시 수준을 넘어가기 때문에 좀 흐리게 보이기는 했지만 해상도 범위를 넘어가는 경우에 임시로 쓸만한 수준은 되었다.

RAM은 256MiB와 512MiB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부족한 성능에 램만 많아봐야(?) 걸맞지 않고 오히려 배터리 사용만 늘어난다는 이유로 256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512를 썼다.

HDD는 30GiB와 40GiB가 있었다. 굳이 대용량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30을 썼다.

크기와 무게는 대략 PSP 정도 크기인 16cm x 8cm에 500g 전후의 무게로 왼손에 가만히 들고 있으면 은근히 무게가 느껴졌다. 기본으로 딸려 온 덮개식 케이스는 뒤에 다리를 두 단계로 펼 수가 있어서 세워놓고 쓰기 괜찮았다.

주변기기

본체를 구입한 다음날 모니터도 질렀다. 연결 케이블을 통해 D-SUB로 모니터를 연결할 수 있었다. 최대 해상도에 제한이 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지장이 없었다.

터치는 감압식으로, 정전식에 비해 인식의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나 나름대로 쓸만했다. 2007년 9월 13일에 터치 고장이 있어 분당에 직접 갔더니 사용 초기에 열에 녹아 얼룩이 생겼던 액정도 무료로 교체 받았다. 한동안 새 것 같아진 화면에 만족했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USB로 연결해 쓰기도 했지만, 본체에 달린 몇 가지 버튼을 조합하고 터치 스크린을 씀으로써 상당 부분 처리가 되었다. 소키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유용하게 썼다.

전원은 이것저것 썼을 때 5시간 조금 못 되는 배터리였고, 공식적인 어댑터 외에 (원래는 3A인데) 12V 2A를 지원하는 다른 어댑터를 따로 사서 썼다. 이동이 잦은 기기다 보니 매번 어댑터를 챙기는 것보다는 집에 두는 것과 들고 다니는 것을 구분하는 게 편했다.

통신은 내장된 게 유무선 모두 없어서 기본 제공된 USB 무선랜을 썼다. 나중에 와이브로를 쓰기도 했다.

특징적인 점으로는 HDD 자체를 USB 외장하드처럼 인식할 수 있었다. 이게 상당히 편했다. (절전 상태에서 접근할 경우 파일시스템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했는지 아예 접근이 안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NTFS-3G의 처리 속도가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라서 때론 윈도우 가상머신 안에 연결을 해 복사를 해야 했다. 한 번은 복사하려다 unknown hard error라는 화면을 만난 적도 있지만 한참 있다가 다시 해보니 되길래 그냥 썼다.

윈도우

여기까지 리눅스를 깔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냥 윈도우를 썼다.

저성능에 맞게 최적화 버전이라는 것이 많이 나돌았고 이 때문에 자잘한 문제도 종종 발생해 따로 최적화를 하는 안내도 많이 찾아봤다. 가령
  • 로그인 정보를 기억하는 것은 서비스 중에서 Protected Storage를 켜고 난 뒤에야 됐다.
  • 무선랜의 경우 WIFI와 와이브로 모두 접속이 된 뒤에도 '네트워크 주소를 가져오는 중'이라고 뜨는 현상이 있었다.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고 '연결됨'으로 바뀌지만 않았는데 연결 속성창을 열어서 확인 버튼을 눌러 닫으면 정상적인 연결 상태로 표시가 됐다.
  • 와이브로 인식이 안 되는 경우는 Smart Card 인식이 꺼져 있는 것이다.
  • svchost.exe 중에 CPU를 먹어치우는 게 있어서 직접 죽이곤 했는데 자동 업데이트를 끄면 괜찮다고 해서 수동으로 바꿨더니 그 뒤엔 증상이 없었다.
  • explorer.exe가 죽고 drwtsn32.exe가 뜨면서 버벅거리는 증상은 레지스트리의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Windows NT\CurrentVersion\AeDebug를 1에서 0으로 바꿔 아예 껐다.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 성능의 제약은 둘째 치고 해상도의 한계 때문에 화면을 넘어가버리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점

자체 전원관리 프로그램이 돌아갔는데 배터리 용량을 기억했다가 일정량 밑으로 떨어지면 꺼지는 식이었다. 윈도우 자체의 전원관리와 연동되는 게 아니라서 조금 불편하긴 했다. 잠깐이라도 안 쓰게 되면 파워 버튼으로 절전 모드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또 한참을 안 쓰면 최대절전 모드로 들어가는 식으로 시간을 분 단위로 설정해두고 썼다.

우클릭 때문에 WalkPC 회원이 만든 롱클릭은 써봤더니 괜찮아서 사겠다고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었다. 세세한 부분에서 엉뚱하다 싶은 동작이 있기도 해서 포기했다. 스크롤이나 제스처 기능도 필요하다 나중에 멀티터치가 널리 쓰일 때까지 단일 포인팅으로는 무리한 부분이었다.

성능 자체도 문제였다. 시기적으로 고성능을 요하는 대용량 처리가 한창 증가하는 시기였는데 저전력 저발열 특성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저성능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2008년 3월경 인텔은 저전력 저발열 특성을 살리면서도 성능을 펜티엄 4 수준으로 올린 아톰칩을 발표해 향후 넷북 붐으로 이어지는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다.

차기 모델

2007년 5월에 발표된 에버런은 액정을 4.8인치로 늘리고 키보드를 약소하나마 내장하고 무선랜과 블루투스를 내장했다. 또한 광터치 마우스라고 해서 거의 마우스에 필적하는 뛰어난 사용감을 보여주는 입력장치가 들어갔다.베가와 같은 CPU를 써서 성능에 대단한 향상은 없었지만 깔끔하게 다듬어져서 베가 2.0이라 할만했다.  분해해본 바로는 매우 단순하고 깔끔한 구조였다.

2008년 8월에 에버런 노트라고 AMD 듀얼코어 CPU에 빵빵한 그래픽을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정도의 크기에 밀어넣은 물건이 나왔다. 멀쩡한 노트북을 압축해놓은 듯한 구성이었는데 너무 매니악했던지 그다지 많이 팔리진 않은 것 같다.

같은 회사는 아니지만 2008년 2월에 나온 B1L이나 2009년 2월에 나온 mbook이 이 제품군을 계승하는 셈이다. mbook은 리눅스 MID로 마케팅을 벌였지만 초기에 (당시까지 드라이버가 없었던 GMA 500 칩셋 등) 스펙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응용 프로그램의 완성도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부품들의 성능과 발열 특성 등이 개선되면서 오히려 다른 영역에 속했던 스마트폰 제품군에 잠식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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